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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기요사키 '부자 아빠의 리치 패밀리'
돈 이야기 피한 집에서 생기는 금융 문맹
부의 세습보다 먼저 필요한 금융 문해력



돈 이야기를 안 하는 집이 있다.점잖아서가 아니다.대개 불편해서다.월급날 잠깐 조용하고 카드값 빠져나가는 날,식탁의 공기가 달라진다.아이들은 그 분위기를 먼저 배운다.부모가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돈은 말해선 안 되는 것,부족하면 부끄러운 것,많으면 어쩐지 떳떳하지 않은 것.그렇게 자란 아이가 어느 날 사회에 나가 대출 약정서와 신용카드 한도,월세 계약서와 주식 계좌 앞에 선다.아무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배운 뒤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의 리치 패밀리'가 주목하는 지점은 여기다.금융교육은 학교의 과목이기 전에 가정의 대화라는 주장.새롭지는 않다.기요사키가 1997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이후 반복해온 메시지의 가족판에 가깝다.좋은 직장,안정된 월급,슬롯머신 효과성실한 저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자산과 부채를 구분하고,근로소득을 수동적 소득과 투자소득으로 옮겨가며,숫자와 현금흐름을 읽는 법을 익혀야 한다.그는 이번에도 같은 칠판 앞에 섰다.다만 청중이 개인 투자자에서 부모와 자녀로 넓어졌을 뿐이다.

이 반복이 새삼 힘을 얻는 것은 시대가 다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고용은 안정의 다른 이름이 아니게 됐고,월급은 물가와 대출이자 앞에서 자주 작아진다.부모 세대가 믿었던 성실의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이 가정 안으로 들어왔다.아이를 공부 시키는 이유가 좋은 직장 하나로 수렴되던 시절과 달리,이제 부모들은 묻기 시작한다.직장을 얻은 뒤의 삶은 누가 가르칠 것인가.

기요사키의 장점은 복잡한 금융 세계를 겁먹지 않아도 되는 언어로 바꾼다는 데 있다.회계,투자,현금흐름,자산,부채 같은 말은 많은 사람에게 차갑고 멀다.그는 그 단어들을 가정의 거실로 끌어온다.아이에게 용돈을 주는 문제,슬롯머신 효과여가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월급을 받은 뒤 무엇을 먼저 떼어놓는가,어떤 말을 자주 쓰는가.이런 장면 속에서 돈은 더 이상 증권사 앱 속 그래프가 아니라 생활의 문법이 된다.부모가 아이에게 남길 수 있는 금융교육은 "부자가 돼라"가 아니라 "돈 앞에서 무지하지 말라"에 가까워진다.

문제는 바로 그 단순함이다.기요사키의 세계에는 지나치게 선명한 선이 있다.부자와 중산층,자산과 부채,사업가와 직원,투자자와 노동자.선명한 말은 독자를 움직이지만,현실을 과감히 생략한다.누구나 여가 시간을 투자 공부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빚이 모두 어리석은 소비의 결과도 아니다.

주식 전광판 숫자는 매일 흔들리지만,그 숫자를 읽는 힘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돈을 말하고 배우는 가정의 습관이 금융 문해력의 출발점이 된다.사진은 1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증시와
주식 전광판 숫자는 매일 흔들리지만,그 숫자를 읽는 힘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돈을 말하고 배우는 가정의 습관이 금융 문해력의 출발점이 된다.사진은 1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증시와 환율 등을 모니터하는 모습.조용준 기자


월급에 기대는 삶을 낡은 방식처럼 말하는 순간,돌봄노동과 저임금 노동,주거비와 교육비,경기침체와 질병 같은 구체적인 조건들이 희미해진다.금융 문해력이 중요하다는 말이 가난한 사람에게 "네가 몰라서 그렇다"는 말로 변질되는 순간,이 책의 언어는 위험해진다.

그래도 이 책을 그냥 자기계발서의 낡은 반복으로 밀어낼 수는 없다.한국 사회에서 돈은 이미 가장 큰 교육 주제면서도,정작 가장 서툴게 가르치는 주제다.아이는 수능 경제를 풀 수 있어도 전세대출 구조를 모를 수 있고,부모는 주식 계좌를 열어주면서도 손실을 대하는 태도는 말해주지 않는다.

돈을 좋아하라고 가르치거나,돈을 숭배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돈이 사람을 어떻게 조급하게 만들고,슬롯머신 효과어떤 약속에 묶어두며,어떤 선택지를 열거나 닫는지 말해주는 쪽에 가깝다.이 점에서 '부자 아빠의 리치 패밀리'는 재테크 책보다 가족 식탁 한가운데 놓인 불편한 질문에 가깝다.

가장 좋은 독법은 기요사키를 선생님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불편한 손님으로 식탁에 앉히는 것이다.그의 말 중 일부는 맞고,일부는 거칠며,일부는 시대착오적이다.그러나 그가 던지는 질문 하나는 남는다.우리는 아이에게 돈을 어떤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가.두려움인가,허세인가,침묵인가,아니면 판단의 언어인가.

'부자 아빠의 리치 패밀리'의 쓸모는 투자 비법에 있지 않다.가족 안에서 돈을 말하는 방식을 점검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부의 세습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금융 언어의 세습이다.아이에게 남는 것은 잔고의 크기만이 아니라,슬롯머신 효과돈을 읽는 습관이다.

부자 아빠의 리치 패밀리 | 로버트 기요사키 지음 | 오웅석 옮김 | 민음인 |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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